기적을 낳는 말 살며 느끼며

기적을 낳는 말, 행복을 낳는 말
[생활 속 행복처방 8] 긍정의 감정을 키우는 언어습관
이송미 (hoho053)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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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성 폐암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는 점점 나아 완전히 낫는다'는 말을 10분간 반복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폐암에 걸렸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다.

 

이 기적적인 치유담은, 하버드 의대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심신의학자인 디팩 초프라 박사의 환자 이야기다. 그녀는 병원에서 힘든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을 받으면서도 다른 환자들과 달리 고통과 부작용을 호소하지 않고 빠르게 호전되었다.

 

그런 그녀를 주시한 초프라 박사는, 그녀가 치유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위해 매일 '낫는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빠른 쾌유가 긍정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환자들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이 일으키는 기적을 많이 지켜본 초프라 박사는 '인간의 마음은 모든 실재를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긍정적인 마음은 죽음 앞에서도 살아나고, 삶을 변화시킬 강력한 힘을 낸다. 그리고 '말'은 그 마음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다. 말은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의 소망을 구체화해서 규정하고, 무의식을 자극해 현실을 만드는 막강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우리는 누구나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게 당장 쉽지 않다면 우선 마음은 놓아두고 말부터 바꾸어 마음의 변화를 유도해보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은 말로 표현되지만, 말 역시 마음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말하는 대로 흘러가고, 말이 곧 씨가 된다는 것은 오늘날 과학에 의해 구체적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과학이 밝힌 언어의 힘

 

사람의 뇌는 매일 사용하는 언어로 세뇌된다. 최근 신경의학자들은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언어습관이 우리 몸의 전체 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곧 감정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뇌 과학자들 역시 평소의 언어습관이 뇌 프로그램을 바꾸어 사고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첨단 MRI(자기공명장치) 등의 영상기기를 통해 사람이 말을 할 때, 뇌가 변화하고 목소리가 메신저 역할을 함을 증명해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은 뇌에 저장될 때 대강의 이미지, 즉 화상 정보로 바뀌는데, 이때 말로 세부적인 사항을 설명하면 이미지의 내용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를테면 반복해서 자신의 소망을 말하면, 뇌 프로그램의 변화를 이끈다는 말이다.

 

우울감이나 열등감이 큰 사람도 자신을 격려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 행복감과 자신감이 강한 사고로 변할 수 있다. 긍정적인 언어습관을 통해 뇌 속에 저장된 부정적 사고방식을 전환하고 자신이 원하는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을 긍정화하는 방법이자 자기 세뇌의 길이다.

 

물과 파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언어가 전하는 위력을 생생히 알 수 있다. 마사루 박사는 물에 다양한 감정의 말을 전한 후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사랑', '감사',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할 때 물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결정 상태를 이루고, '죽인다' '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물의 결정은 일그러지거나 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몸도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 인체뿐인가!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강과 바다, 대기 중 수증기, 땅 속의 지하수 등 물로 덮여 있다. 말하자면 인체의 안과 밖의 환경이 수분으로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수분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단지 마사루 박사의 실험 결과만 적용해도 자신과 세상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일그러지고 깨진 결정으로 이루어진 인체와 세상에서 행복과 건강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은 현실을 낳는 동력 

 

과학이 밝힌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난 행복해' '모든 것이 잘 될 거야'처럼 긍정적인 말을 할 때와 '난 불행해' '되는 일이 없어'처럼 부정적인 말을 할 때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말이 곧 에너지이고, 감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실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뼈져리게 느낀 것은 어머니를 간병할 때였다. 내 어머니는 아토피, 중풍, 암으로 이어지면서 오랜 세월 투병생활을 하셨고, 난치병이 줄줄이 이어지다보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걱정을 키우고 있었다. '병이 더 심해지면 어쩌지!' '더 큰 병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근심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무의식에 잠재된 생각이 은연중에 말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음식이야' '이건 위험해' '그러면 병이 더 심해질지도 몰라' 하는 식의 불안감을 키우는 말을, 나도 모르게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해도, 부정적인 언어습관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은 무의식 속에서 인체의 치유시스템을 방해해 곧 실제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언어습관도 바꾸어나갔다. '그렇게 하면 빨리 낫지'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라는 긍정적인 말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언어습관을 비롯해 삶 전반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그 긍정적 감정이 만드는 치유의 생리작용으로 어머니는 모든 병의 굴레를 비로소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마음으로 유도하기 위해, 평소 언어습관부터 긍정화해야 한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고 평온한 말로 바꾸어야 한다.

 

'나는 왜 되는 일이 없지' '삶이 너무 힘들어' '왜 나는 불행할까' '내겐 불가능한 일이야' 등의 부정적인 말을 많이 사용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잘 할 수 있어' '나는 분명히 역경을 이겨내고 도약한다' '내 손으로 꼭 행복의 문을 연다' '잘 될 거야. 내겐 불가능은 없어' 라는 식으로 바꾸어보자.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언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결국 자신이 소망하는 행복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라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담은 문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반복하는 것도,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소망을 말로 표현해 인위적으로 뇌에 각인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가령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은 완전히 건강하다'는 말을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무의식에 주입되어 실제 치유의 생리작용을 유도한다.

 

자신의 소망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언어치유', 심리학에서는 '자기암시', 성공학에서는 '선언기법'이나 '확언기법'이라고 한다. 자기암시가 실제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스크랜튼 대학 연구팀은 '금연을 하거나, 채식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등 자신의 목표를 공개적으로 말로 밝힌 사람들이 목표만 세운 사람들보다 10배나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산다' 등 자신의 꿈을 이룬다고 믿고 확언한 사람들이 실제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은 많은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연구 결과이다. 이것을 행복강의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 박사는  스스로 자기를 실현해가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실현적 예언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라고 권한다.

 

자신이 원하는 소망과 행복을 자기암시문으로 만들어 꾸준히 말해보자.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이 차오르고, 소망을 이루는데도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자기암시문을 만들 때는 몇 가지 유의 할 점이 있다.

 

우선 부정어가 아닌 긍정어로 말해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부정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면 '불안'만 무의식에 심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나는 늘 평온하다'는 긍정적인 암시문을 써야 한다. '우울증이 없어진다'는 말 대신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건강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말의 핵심을 문제점에 집중해서 부정어를 사용하지 말고, 행복과 원하는 대상에 집중해서 암시문을 만들어야 한다.

 

소망을 이미 이룬 듯 말하는 것도 지켜야 할 점이다. 자신의 소망을 선언하는 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 가운데 하나가 미래 가정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곧 행복해질 것'이라는 식의 미래형 표현은 결국 현재는 불행하다는 말이고, 불행한 상황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행복한 모습을 생생히 상상할 때 뇌가 착각하고 행복호르몬을 생산하듯, 언어 역시 행복하다는 현재형의 단정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삶이 즐겁다.' 나아가 행복한 삶을 이룬 후 그 기쁨을 느끼면서 말하는 것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행복한 삶에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이 좋다. 자기암시를 통해 받는 긍정적인 감정이 강하면, 당연히 생각과 말이 현실화되는데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성공학자들은, 성공에 이미 도달한 관점에 서야만 성공의 방법론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행복을 소망하는 말을 하거나 상상 혹은 기도를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적으로 밝혀졌듯이 생각에너지를 집중하는 간절한 기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뇌과학의 시각에 입각해 '무엇을 이루게 해주십시오'라고 하기 보다는 이미 꿈을 이룬 것처럼 '소망을 이루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복을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오히려 불행한 현재의 상황을 강화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미 소망이 이루어졌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기도해야 그 기도가 큰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자기 암시를 통한 세뇌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담은 자기암시를 할 때는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신생리학자인 에멧 밀러 박사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훈련의 핵심 키워드는 '반복'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말로 자기 암시를 하든,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든, 긍정화 훈련은 반복적으로 계속할 때, 무의식에 저장된다는 말이다.

 

자기 암시문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꾸준히 말해보자. 학자에 따라 하루에 50번씩 반복하라는 이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10분씩 반복하라는 이도 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몇 마디나 혹은 1분으로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시간을 조정하면 될 것이다. 

 

자기암시를 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기상 직후와 취침 전이다. 이때가 심신이 편안하고 충분히 이완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을 움직여서 자기암시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기상 직후나 취침 직전에 하기를 권한다.

 

잠들기 전에 단 1분이라도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행복한 삶의 암시문을 집중해서 말해보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건강하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삶에 감사합니다.'

 

그 무엇이든 좋다. 그렇게 자신의 뇌에 계속 주입된 말이, 거짓말처럼 실제 행복한 마음과 삶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 이송미 (건강전문작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기적의 상상치유’ 저자)
이 글은 제 블로그 '행복한 상상치유(http://blog.naver.com/hoho053)'에도 올립니다.

2010.10.20 11:25ⓒ 2010 OhmyNews

기적을 낳는 말, 행복을 낳는 말

[생활 속 행복처방 8] 긍정의 감정을 키우는 언어습관

이송미 (hoho053)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64677&PAGE_CD=N0000&BLCK_NO=2&CMPT_CD=M0031

어느 여성 폐암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는 점점 나아 완전히 낫는다'는 말을 10분간 반복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폐암에 걸렸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완전한 건강을 되찾았다.

이 기적적인 치유담은, 하버드 의대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심신의학자인 디팩 초프라 박사의 환자 이야기다. 그녀는 병원에서 힘든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을 받으면서도 다른 환자들과 달리 고통과 부작용을 호소하지 않고 빠르게 호전되었다.

그런 그녀를 주시한 초프라 박사는, 그녀가 치유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위해 매일 '낫는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빠른 쾌유가 긍정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환자들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이 일으키는 기적을 많이 지켜본 초프라 박사는 '인간의 마음은 모든 실재를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듯 긍정적인 마음은 죽음 앞에서도 살아나고, 삶을 변화시킬 강력한 힘을 낸다. 그리고 '말'은 그 마음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다. 말은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의 소망을 구체화해서 규정하고, 무의식을 자극해 현실을 만드는 막강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우리는 누구나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게 당장 쉽지 않다면 우선 마음은 놓아두고 말부터 바꾸어 마음의 변화를 유도해보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은 말로 표현되지만, 말 역시 마음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말하는 대로 흘러가고, 말이 곧 씨가 된다는 것은 오늘날 과학에 의해 구체적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과학이 밝힌 언어의 힘

사람의 뇌는 매일 사용하는 언어로 세뇌된다. 최근 신경의학자들은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언어습관이 우리 몸의 전체 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곧 감정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뇌 과학자들 역시 평소의 언어습관이 뇌 프로그램을 바꾸어 사고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첨단 MRI(자기공명장치) 등의 영상기기를 통해 사람이 말을 할 때, 뇌가 변화하고 목소리가 메신저 역할을 함을 증명해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은 뇌에 저장될 때 대강의 이미지, 즉 화상 정보로 바뀌는데, 이때 말로 세부적인 사항을 설명하면 이미지의 내용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를테면 반복해서 자신의 소망을 말하면, 뇌 프로그램의 변화를 이끈다는 말이다.

우울감이나 열등감이 큰 사람도 자신을 격려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 행복감과 자신감이 강한 사고로 변할 수 있다. 긍정적인 언어습관을 통해 뇌 속에 저장된 부정적 사고방식을 전환하고 자신이 원하는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을 긍정화하는 방법이자 자기 세뇌의 길이다.

물과 파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언어가 전하는 위력을 생생히 알 수 있다. 마사루 박사는 물에 다양한 감정의 말을 전한 후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사랑', '감사',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할 때 물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결정 상태를 이루고, '죽인다' '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물의 결정은 일그러지거나 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몸도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 인체뿐인가!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강과 바다, 대기 중 수증기, 땅 속의 지하수 등 물로 덮여 있다. 말하자면 인체의 안과 밖의 환경이 수분으로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수분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단지 마사루 박사의 실험 결과만 적용해도 자신과 세상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일그러지고 깨진 결정으로 이루어진 인체와 세상에서 행복과 건강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은 현실을 낳는 동력

과학이 밝힌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난 행복해' '모든 것이 잘 될 거야'처럼 긍정적인 말을 할 때와 '난 불행해' '되는 일이 없어'처럼 부정적인 말을 할 때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말이 곧 에너지이고, 감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실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뼈져리게 느낀 것은 어머니를 간병할 때였다. 내 어머니는 아토피, 중풍, 암으로 이어지면서 오랜 세월 투병생활을 하셨고, 난치병이 줄줄이 이어지다보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걱정을 키우고 있었다. '병이 더 심해지면 어쩌지!' '더 큰 병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근심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무의식에 잠재된 생각이 은연중에 말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음식이야' '이건 위험해' '그러면 병이 더 심해질지도 몰라' 하는 식의 불안감을 키우는 말을, 나도 모르게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해도, 부정적인 언어습관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은 무의식 속에서 인체의 치유시스템을 방해해 곧 실제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음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언어습관도 바꾸어나갔다. '그렇게 하면 빨리 낫지'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라는 긍정적인 말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언어습관을 비롯해 삶 전반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그 긍정적 감정이 만드는 치유의 생리작용으로 어머니는 모든 병의 굴레를 비로소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복한 마음으로 유도하기 위해, 평소 언어습관부터 긍정화해야 한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고 평온한 말로 바꾸어야 한다.

'나는 왜 되는 일이 없지' '삶이 너무 힘들어' '왜 나는 불행할까' '내겐 불가능한 일이야' 등의 부정적인 말을 많이 사용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잘 할 수 있어' '나는 분명히 역경을 이겨내고 도약한다' '내 손으로 꼭 행복의 문을 연다' '잘 될 거야. 내겐 불가능은 없어' 라는 식으로 바꾸어보자.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언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결국 자신이 소망하는 행복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라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담은 문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반복하는 것도,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소망을 말로 표현해 인위적으로 뇌에 각인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가령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은 완전히 건강하다'는 말을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무의식에 주입되어 실제 치유의 생리작용을 유도한다.

자신의 소망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언어치유', 심리학에서는 '자기암시', 성공학에서는 '선언기법'이나 '확언기법'이라고 한다. 자기암시가 실제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스크랜튼 대학 연구팀은 '금연을 하거나, 채식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등 자신의 목표를 공개적으로 말로 밝힌 사람들이 목표만 세운 사람들보다 10배나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된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산다' 등 자신의 꿈을 이룬다고 믿고 확언한 사람들이 실제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은 많은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연구 결과이다. 이것을 행복강의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 박사는 스스로 자기를 실현해가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실현적 예언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라고 권한다.

자신이 원하는 소망과 행복을 자기암시문으로 만들어 꾸준히 말해보자.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이 차오르고, 소망을 이루는데도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자기암시문을 만들 때는 몇 가지 유의 할 점이 있다.

우선 부정어가 아닌 긍정어로 말해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부정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면 '불안'만 무의식에 심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나는 늘 평온하다'는 긍정적인 암시문을 써야 한다. '우울증이 없어진다'는 말 대신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건강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말의 핵심을 문제점에 집중해서 부정어를 사용하지 말고, 행복과 원하는 대상에 집중해서 암시문을 만들어야 한다.

소망을 이미 이룬 듯 말하는 것도 지켜야 할 점이다. 자신의 소망을 선언하는 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 가운데 하나가 미래 가정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곧 행복해질 것'이라는 식의 미래형 표현은 결국 현재는 불행하다는 말이고, 불행한 상황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행복한 모습을 생생히 상상할 때 뇌가 착각하고 행복호르몬을 생산하듯, 언어 역시 행복하다는 현재형의 단정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삶이 즐겁다.' 나아가 행복한 삶을 이룬 후 그 기쁨을 느끼면서 말하는 것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행복한 삶에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이 좋다. 자기암시를 통해 받는 긍정적인 감정이 강하면, 당연히 생각과 말이 현실화되는데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성공학자들은, 성공에 이미 도달한 관점에 서야만 성공의 방법론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행복을 소망하는 말을 하거나 상상 혹은 기도를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적으로 밝혀졌듯이 생각에너지를 집중하는 간절한 기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뇌과학의 시각에 입각해 '무엇을 이루게 해주십시오'라고 하기 보다는 이미 꿈을 이룬 것처럼 '소망을 이루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복을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오히려 불행한 현재의 상황을 강화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미 소망이 이루어졌고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기도해야 그 기도가 큰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자기 암시를 통한 세뇌

자신의 소망과 행복을 담은 자기암시를 할 때는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신생리학자인 에멧 밀러 박사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훈련의 핵심 키워드는 '반복'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말로 자기 암시를 하든,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든, 긍정화 훈련은 반복적으로 계속할 때, 무의식에 저장된다는 말이다.

자기 암시문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꾸준히 말해보자. 학자에 따라 하루에 50번씩 반복하라는 이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10분씩 반복하라는 이도 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몇 마디나 혹은 1분으로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시간을 조정하면 될 것이다.

자기암시를 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기상 직후와 취침 전이다. 이때가 심신이 편안하고 충분히 이완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을 움직여서 자기암시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기상 직후나 취침 직전에 하기를 권한다.

잠들기 전에 단 1분이라도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행복한 삶의 암시문을 집중해서 말해보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건강하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삶에 감사합니다.'

그 무엇이든 좋다. 그렇게 자신의 뇌에 계속 주입된 말이, 거짓말처럼 실제 행복한 마음과 삶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 이송미 (건강전문작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기적의 상상치유’ 저자)

이 글은 제 블로그 '행복한 상상치유(http://blog.naver.com/hoho053)'에도 올립니다.

2010.10.20 11:25 ⓒ 2010 OhmyNews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 살며 느끼며

(리뷰) 전기자동차를 누가 죽였나 (Who Killed The Electric Car, 2006) Documentary

재미있는 소재의 타큐멘터리 이다.

좀 구태의연하긴 하다.
이 다큐가 제작된건 2006년도이고, 이미 4년이나 지난 현재 시점에서,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전기자동차가 큰 테마를 형성하고 있으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이미 시판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고 보급이 거의 전무하긴 하지만,
분명 대세는 전기자동차이다.
판세가 바뀐 것이다.

이 다큐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본다면 참으로 옛날일 같이 보이는 이야기이다.
겨우 4년전인데도 말이다.

다큐상에서 보면, 전기자동차는 이미 2001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제작이 되었다.
나중에야 EV(전기자동차) 동호인들에 의해 알려진 일이지만, 전기자동차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인 충전후 주행거리문제도 실제로는 해결방법이 있었다.
한 연료전지 개발회사에서 만들어진 전지를 이용했다면, 한번 충전으로 480Km 를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솔린 자동차와 크게 다를것이 없기 때문에 전기자동차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주행거리 문제는 사실 음모(?)에 의해 과장되고 은폐된 조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자동차 보유대수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석유자원 전쟁으로 인해 중동지역에서는 수없이 국지전이 발생하고, 매일 뉴스에서는 석유값이 얼마인지 브리핑 해주고 있으며, 세계 석유 매장량의 2/3 를 보유하고 있는 중동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자원전쟁도 유발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일찌기 수소자동차, 태양광발전 자동차,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이 연구되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이다.

발췌-----------
천식발병률,암발병률, 어린이의 폐 발달, 어린이들은 밖에서 놀도록 허락받지 않고 있습니다.
1989년, 한 연구에 의하면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15에서 25세 중 4분의 1은 심각한 폐장애와 만성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0년, 스모그 경보에는 41 단계가 있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운전하더라도, 우리가 태우는 매 갤런(3.8L)마다, 공기중으로 19파운드(8.6kg)의 이산화탄소를 축적합니다.
우리가 더많은 휘발류를 태울때마다, 더많은 CO2 를 우리는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그 CO2에 무엇을 하지않는다면, 그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것은 대기중으로 올라가고 CO2 는 지구온난화 기체입니다.
나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가 사회 안보문제나 테러와의 전쟁문제조차보다도 훨씬 더 크게 될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라는 핵시한폭탄과 동등한것을 우리 손에 쥐고 있습니다.
대기 오염으로 인한 폐병이 중요하지 않다면, 모든 그런것들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우리는 힘든 고생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공중 보건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인책들을 가져야 하고 대안들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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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이 심각하던 캘리포니아에서 전기자동차가 연구 개발되기 시작했고, 상업적 가능성이 보이자, 캘리포니아는 무배출가스차량에 대한 명령을 통과시킨다.

발췌-----------
현대적 전기자동차가 이제 가능함을 알게되면서, 캘리포니아 당국은 대담하고 전례가 없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무배출가스차량 명령 1990]
그들은 무배출가스차량 명령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자동차제작사들이 차를 캘리포니아에서 게속 팔기를 원한다면, 그 차들의 어느정도는 배출가스가 없는 차량이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점차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1998년에 2%,2001년에 5% 그리고 2003년 10% 입니다.
자동차회사들에게는 단지 두가지 선택사항이 있었습니다.
그 법을 따르든가 싸우는 것입니다.
마침내,그들은 양쪽을 다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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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GM(제네럴모터스) 사는 EV1 이라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시험운행(사용자들에게 임대) 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으로 공방을 벌이기 시작한다.

제작된 EV1 은 기존의 휘발유 차와 비교해도 큰 무리가 없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큐상에서 당시(대략 2000년도 초반)에 휘발유가 갤런(3.8L)당 60센트(미국은 우리나라보다 기름값이 훨씬 싸다) 이고,
EV1 은 한번 충전으로 70~80마일(112Km~128Km) 을 운행할 수 있었다.
'한번 충전' 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가격이 얼마이던간에 한번 가득 채운후 주행하는 거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거리 여행을 한다거나 하게 되면, 특히나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경우, 주요소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차가 멈춰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다음 충전소까지 도달할때 까지는 어느정도 운행거리가 뒷바침 되야 한다.
한번 충전에 120Km 정도밖에 못 간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던것 같다.
사실, 그런 문제는 최근 전기자동차 붐(?)이 일고 있으면서도 논란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다큐의 후반부에 나옴) 당시에 이미 고효율의 축전지가 개발이 되어 있었다.
그 축전지를 사용했다면 한번 충전으로 480Km 주행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니, 사실 EV1 이 중도에 망한것은 조직적인 음모가 있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석유자원이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자원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 때문이었는지, 미국에서 이렇게 자원과 환경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때도(불과 몇년전인데도) 우리는 전혀 딴 세상을 살고 있었던것 아닌가.
우리는, 석유 한방울 안나오면서도 어떻게 어떻게든 수출만 잘하면 큰 성장을 이룩해 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들(성장률, GDP 등)을 키우는데에만 급급해서 환경문제나 자원문제는 등한시 해왔다.
물론, 최근에 자원국가인 우크라이나나 해외 자원국으로 자원확보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고, 탄소배출권도 시행이 되기 시작했으며, 전기자동차 산업 분야에서도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EV1 은 당시의 저급 축전지로, 한번 충전시 120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었고, 속도도 일반 자동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환경 문제에 있어서, 대기오염 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는 획기적인 물건이었음에도 사장되었다.
주행거리가 짧은 것은 따지고 보자면 큰 문제도 아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퇴근을 위해 하루에 120Km 이상을 주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 목적에 따라 부분적으로 보급할수도 있었던 문제이다.
하지만, 결국 캘리포니아는 자동차회사들과 석유회사들, 정부에 의해 법정 분쟁에서 지고 '무배출가스차량 명령 1990' 을 폐기했다.
그에따라, 이미 수십명에게 시범적으로 임대하여 운행중이던 EV1 들은 모두 강제 회수되고 폐차되었다.
당시, EV1 을 임대해서 사용했던 사람들이나 EV1 개발에 참여했던 직원들(저 임금에도 미래를 보고 인생을 투자했던), 그들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EV1 의 폐차를 막기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몇몇은 체포되었고, 마지막 EV1 까지 모두 폐차되었다.
마치, 그런 차들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감추기라도 하려는듯이 말이다.

사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보급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휘발유로 움직이는 차량을 사용하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 엄청난 수의 주유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동지역에서는 엄청난 석유를 뽑아내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중동의 상위층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곳에 연관되어 있다.

이젠 이미 익숙해진 가스자동차 역시, 가스 자동차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가스충전소가 필요하다.
가스자동차가 한창 보급이 되기 시작했을때, 당시에 가장 큰 걸림돌이 가스충전소가 적었던점을 보면, 전기자동차를 운용하기 위해서 인프라 구축이 상당한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는 개발당시에 집에서도 충전하는 차로 만들어지긴 했는데,
아직 전기자동차에 대해 잘 몰라서 정확한 분석은 힘들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기 누진세가 적용되고 있다.
즉, 가정에서는 일정 전기량을 초과하면 세금이 엄청나게 많이 붙는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가정에서 자동차 충전을 하는게 비용이 적절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인프라가 구축이 되어서 충전소가 여기저기 생겨난다면(영업용은 가정용보다 싸니까) 비용이 훨씬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다큐는 이어진다.
당시 미국에서는 수소자동차 개발에 대해서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수소자동차 역시 충전소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소자동차는 몇가지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발췌-----------------------
우리는 수소 저장용기, 내구성,비용절감의 풀어야할 몇가지 실제적인 기술적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것은 실용적인 해결책입니까?
그 차들은 제한된 주행거리를 갖습니다,
차의 내구성은 매우 좋지는 않습니다...
봅시다,그외 다른것은 없습니까?
그것들은 추운날씨에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것만 빼고는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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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보니 전기자동차 보다 나쁘면 나빳지 좋지는 않다.
또한, 당시 수소자동차 판매단가가 100만달러라고 하니..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상업적 가능성이 있던 전기자동차는 모두 폐차시키고 은폐시키고, 수소자동차 개발에 돈을 계속 지원한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 개탄하는 것이다.

과연,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을까?
그것은, 정부와 거대 석유회사들, 자동차 회사, CARB (캘리포니아 대기 자원국), 소비자들이 모두 유죄다.
모두들 아직 전기자동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전기자동차의 보급을 막아선 꼴이다.
정부는 로비스트들에게 돈을 받고 캘리포니아의 '명령' 을 폐지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석유회사들은 자신들의 독점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물건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로비와 방해공작을 펼쳤으며, 소비자들은 너무 무지했다.
그렇다면 EV1(Electric Behicle) 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던 GM 은 왜 EV1 을 포기하고 법정공방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명령' 을 폐지시키고 EV1 을 전부 폐차시켰을까?
그것은 상업성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기자동차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는 18만개의 주유가 있는데, 전기자동차를 위해 엄청난 전기충전소를 지어야 하고, 이는 인프라 구축비용 뿐만 아니라, 거대 석유회사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문제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GM 은 EV1 을 포기하고 SUV(사륜구동) 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수년전 SUV 바람이 잠깐 불었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EV1 이 사장된 이후, 중동지역에서 이라크전이 터지고, 석유값이 치솟았으며, 자원전쟁에 대한 논란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란이 가속된다.
일본에서 프리우스를 비롯한 전기자동차(하이브리드)가 만들어졌고, 미국도 뒤늦게 다시 전기자동차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할듯 하다.

우리나라처럼(일본 역시) 자원 빈국인 나라에서는 전기자동차의 보급이 획기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정부에서 의지를 가지고 전기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기자동차 개발을 지원한다면, 적어도 우리나라 내에서는 기름한방울 사용하지 않으며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 새로운 탈것으로 인한 혁명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러면, 석유 의존도도 현저히 낮아질 것이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최근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테마는 태양광, 풍력 발전과, 전기자동차 및 연료전지 테마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때, 분명 전기자동차가 보편적으로 보급될날이 그리 멀지많은 않은것 같다.

P.S.
한때 전기자동차 이슈는 일본의 프리우스를 필두로 거세게 일기 시작한것 같은데,
뒤늦게나마 미국이 뛰어들기 시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때, 자동차 산업으로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며 세계제1의 부국이 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는 처참하다.
일본과 한국에 밀려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며, 이제는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중산층이 되어 장밋빛 미래를 꿈꿨었지만, 이제 대부분 해고가 되었고,
자동차 생산설비는 임금이 싼 외국으로 대부분 이전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전통적 자동차 시장에서는 더이상 승부를 내기는 힘들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 쪽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다면, 새로운 제2의 자동차 산업의 부흥을 꾀할수도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현재의 전기자동차 붐은 좋은 기회임에 분명하다.

줄거리 스크랩------------------------------------------
::: 줄거리 (Synopsis)

- 고유가 시대의 새로운 대안, 전기 자동차에 관한 진실
- 제너럴 모터스가 탄생시킨 전기 자동차 EV-1을 둘러싼 묻혀진 비밀과 음모
- 2006년 선댄스 영화제, 트라이베카 영화제 상영작
- 2007년 미국 작가협회상의 다큐멘터리 각본상 노미네이트
- 2007년 브로드캐스트 영화비평가협회 각본상 노미네이트
- 인기 배우 마틴 쉰의 완벽한 나레이션!

전기 자동차를 아십니까?
고유가 시대,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국내 산업과 소비자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시대에 딱 떠오르는 대안은 바로 대체 에너지이다. 때문에 전기 자동차에 관한 관심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가 개발한 전기 자동차 EV-1. 현실적 난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기 자동차는 환경보호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며 대중 차로 양산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외면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동차 회사와 이익을 추구하는 석유 회사의 로비, 그리고 미국 정부에 의한 거대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음모라고 이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에 관한 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룬 이 작품은 인기 배우 마틴 쉰이 나레이션을 담당하고 크리스 페인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2006년 선댄스 영화제와 트라이베카 영화제에 상영되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으며 2007년 미국 작가협회상의 다큐멘터리 본상과, 브로드캐스트 영화비평가협회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 세상과 미래를 보는 우리의 눈은 조금은 달라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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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살며 느끼며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의 중산층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25가지 통계 수치 살며 느끼며

Updated: Sun., Aug. 1, 2010, 4:50 AM home

So long, middle class

Last Updated: 4:50 AM, August 1, 2010

Posted: 12:27 AM, August 1, 2010

The 25 statistics below prove that the middle class is being systematically wiped out of existence in America. The rich are getting richer and the poor are getting poorer at a staggering rate.

Why? Compared to the rest of the world, American workers are extremely expensive, and the government keeps passing rules, regulations and taxes that make it even more difficult to conduct business here. What has developed is a situation where the people at the top are doing quite well, while the average family barely gets by. Entitlement programs are expanding at unprecedented rates, but it is the people in the middle — who shoulder the costs of these programs, while their salaries stagnate — who are being squeezed in a sea of depressing statistics . . .

1. According to a 2009 poll, 61% of Americans “always or usually” live paycheck to paycheck, which was up from 49% in 2008 and 43% in 2007.

2. 36% of Americans say that they don’t contribute anything to retirement savings.

3. A staggering 43% of Americans have less than $10,000 saved up for retirement.

4. 24% of American workers say that they have postponed their planned retirement age in the past year.

5. The number of Americans with incomes below the official poverty line rose by about 15% between 2000 and 2006, and by 2008 over 30 million US workers were earning less than $10 per hour.

6. According to Harvard Magazine, 66% of the income growth between 2001 and 2007 went to the top 1% of all Americans.

7. In New York, the top fifth of earners collect more than 53% of the income; the bottom fifth takes home less than 3%.

8. Over 1.4 million Americans filed for personal bankruptcy in 2009, which represented a 32% increase over 2008.

9. Only the top 5% of households have earned enough additional income to match the rise in housing costs since 1975.

10. For the first time in US history, banks own a greater share of residential housing net worth in the United States than all individual Americans put together.

11. In 1950, the ratio of the average executive’s paycheck to the average worker’s paycheck was about 30 to 1. Since the year 2000, that ratio has exploded to between 300 to 500 to one.

12. As of 2007, the bottom 80% of American households held about 7% of the liquid financial assets.

13. The bottom 40% of income earners now collectively own less than 1% of the nation’s wealth.

14. Average Wall Street bonuses for 2009 were up 17% when compared with 2008.

15. The average income of the top fifth of New York families is 8.7 times greater than that of the bottom fifth. This is the biggest difference of all states.

16. The average income of families in the top 5% in New York was five times greater than the average income of families in the middle 20% of earners. Again this is the biggest difference of all states.

17. The average federal worker now earns about twice as much as the average worker in the private sector.

18. An analysis of income tax data by the Congressional Budget Office found that the top 1% of US households own nearly twice as much of America’s corporate wealth as they did just 15 years ago.

19. The average time needed to find a job has risen to a record 35.2 weeks.

20. More than 40% of Americans who are employed now work in often low-paying service jobs.

21. For the first time in US history, more than 40 million Americans are on food stamps, and the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projects that number will go up to 43 million Americans in 2011.

22. What American workers compete with: In China a garment worker makes approximately 86 cents an hour, and in Cambodia it’s 22 cents an hour.

23. Despite the financial crisis, the number of millionaires in the US rose a whopping 16% to 7.8 million in 2009.

24. About 21% of all children are living below the poverty line in 2010 — the highest rate in 20 years.

25. According to Professor Emmanuel Saez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the top 10% percent of Americans now take in approximately 50% of the income.

Michael T. Snyder blogs at theeconomiccollapseblog.com



http://www.nypost.com/p/news/opinion/opedcolumnists/so_long_middle_class_GoGvE3xMnYXzZpS2OMGZsI


냉면집 살며 느끼며

[food&] 냉면 맛집 한 바퀴, 저만치 가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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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정민.김상선] 서울시내 평양냉면 ‘사대천왕’을 꼽으라면 을지로 주변에 자리잡은 평양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 우래옥이다. 함흥냉면의 메카는 오장동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식사시간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긴 거리를 움직여가며 냉면 명가를 찾을 순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분식집 냉면이라 깊은 맛은 좀 덜해도 내 입맛에 맞으면 그게 최고의 냉면 아닐까.

사무실이 많이 몰려 있는 오피스 타운, 단골 맛집들이 빽빽한 대학가 주변의 소문난 냉면 맛집을 수소문해 봤다. 해당 지역에 본사와 본교가 있는 기업과 학교 홍보팀으로부터 추천받았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중구 을지로&퇴계로 ((주)샘표 홍보팀 심선애 과장)

필동면옥
매콤하고 깔끔한 육수 … 제육 한점 얹어 한입


샘표 직원들은 회식 다음날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물냉면으로 해장을 한다.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로 매콤함을 더해 담백하고 깔끔한 뒷맛을 보장하는 육수는 정말 최고다. 제육과 수육도 맛있다. ‘돼지고기가 어쩜 이렇게 부드러울까’ 먹을 때마다 감동한다. 시원한 냉면 한 젓가락에 제육 한 점을 얹어 먹는 것이 이 집 냉면을 제대로 즐기는 맛이다. 8000원, 02-2266-2611.

을지면옥
담백의 절정, 제육·수육 ‘반접시’ 군침 도네


필동면옥과 남매지간이라고 들었다. 의정부에 있던 평양냉면집에서 분가한 남매 중 오빠가 필동면옥을, 여동생이 을지면옥을 운영한단다. 남매라고는 하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을지면옥 물냉면은 필동면옥보다 더 심심하다. 나름 냉면 맛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을지면옥 물냉면을 처음 먹었을 땐 ‘이건 뭥미?’ 했을 정도다. 필동면옥의 물냉면도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는 싱겁다는데 을지면옥은 한수 위다. 한데 지금은 메뉴판에는 없는 ‘반접시(제육-돼지고기, 수육-쇠고기 세트)’와 물냉면을 함께 먹는 그 맛에 홀딱 반했다. 8000원, 02-2266-7052.

■중구 명동 (LG CNS 경영지원본부 박지용 대리)

명동함흥면옥
꼬들꼬들 홍어 회냉면에 손만두 추가요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 여름철 점심시간에는 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매콤달콤한 양념과 꼬들꼬들하게 홍어회 씹히는 맛 때문에 회냉면이 유명하다. 육수는 조금 짠 편이다. 물냉면 육수는 단맛이 느껴져서 아무래도 적응기가 좀 필요하다. 얼마 전부터 손만두(7000원)를 팔기 시작했다. 문을 연 지 40년이 넘었기 때문에 인테리어는 깔끔하지 못하지만 세월이 느껴져서 좋다. 선불이라는 점은 못마땅하다. 구걸해서 먹는 기분이다. 7000원, 02-776-8430.

원산면옥
명태 살 올린 회냉면, 질긴 면발이 입에 착착


6월에 새로 문을 열었다. 색다른 냉면 맛을 찾던 명동 부근 직장인들에게는 단비 같은 곳이다. 회냉면이 대표 메뉴인데 홍어가 아닌, 삭힌 명태 살을 꾸미로 올린다. 알고 보니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속초원산면옥이 친 아우의 가게란다. 다대기의 색깔로만 보면 매운 맛이 셀 것 같은데 실제로는 단맛이 강하다. 사장님에게 물었더니 ‘매운 맛과 단맛은 서로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속초원산면옥은 이보다 더 달다고 한다. ‘냉면은 절대 잘라 먹지 않는다’는 주의라서 내게는 질긴 면발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느껴졌다. 회냉면에 제공되는 한우사골육수는 깔끔하다. 현재도 맛있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집이다. 6000원, 02-779-8855.

■중구 서소문 (시청 언론 담당관실 정광현 팀장)

강서면옥
동치미 육수 넣어 시원한 첫맛, 달달한 뒷맛


여름에는 단맛이 당긴다. 그래서 주로 비빔냉면을 찾는다. 서소문에서 68년부터 영업해 온 강서면옥은 비빔냉면, 물냉면 모두 맛있어서 자주 찾는 집이다. 고기국물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서 만든 육수는 첫맛은 시원하고 뒷맛은 달달하다.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단맛에 살짝 질릴 수도 있다. 냉면을 중간쯤 먹었을 때 식초와 겨자로 살짝 육수 맛을 조절하면 좋다. 냉면이 나오기 전까지 빈대떡을 시켜 먹으면 금상첨화. 평양냉면(물냉면) 9500원, 함흥냉면(비빔냉면) 9000원, 02-752-1945.

■중구 광화문 (SK 임수길 브랜드관리실 팀장)

남포면옥
정성어린 육수 내는 그 집 기둥에 ‘손님은 왕’


평양냉면의 전통을 2대가 40년째 잇고 있다는 집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 손님들로 늘 붐빈다. 양지머리와 사태를 푹 고아 만든 고기 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배합한 육수가 별미다. 입구 오른쪽에 나란히 서 있는 항아리들에는 동치미를 담아놓았다고 한다. 뚜껑마다 담근 날짜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낡은 한옥집 실내 기둥에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도 쓰여 있다. 아직도 이런 말이 적혀 있다니, 정말 오래된 집 맞구나! 확인할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8000원, 02-777-3131.

산봉냉면
하얀 사기그릇 속 고춧가루 육수, 눈부터 즐겁지


20년 전 강남 그랜드 백화점(현 롯데 강남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 여러 곳에 지점을 둔 냉면가의 신흥 세력이다. 강북의 중심인 서울파이낸스센터까지 진출해 있다. 사골육수와 동치미를 섞어 만든 물냉면은 색깔이 말간데 하얀 사기그릇에 담겨져 나와서 꽤 고급스러워 보인다. 이 집만의 특징이라면 냉면국물에 고춧가루가 동동 떠있다는 것. 하얀 그릇, 맑은 물에 뜬 빨간 고춧가루를 보면서 ‘색 배합이 좋다’ ‘고급스러움을 깨는 양념’을 놓고 직원들끼리 말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결론은 ‘보기에 어떻든 계속 먹으러 와야겠다’로 내려졌다. 물·비빔 냉면 7000원, 회냉면 8000원, 02-775-8853.

■마포구 염리동 ((주)도레이새한 김은주 홍보팀 부장)

을밀대
얼음 육수 메밀 냉면, 30분은 줄 서야 맛본다


냉면 한 그릇 먹으려면 30분쯤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진을 친 사람들을 위해 올해부터는 긴 파이프 하나가 건물 밖에 등장했다. 숭숭 뚫린 파이프 구멍으로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는데 글쎄, 찜통더위 속에서 그게 도움이 될까. 이렇게 힘들게 기다렸다 일단 좁은 방 한칸에 자리 깔고 앉으면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시원한 물냉면을 먹을 수 있다! 소문난 평양냉면집이라 메밀로 면발을 만드는데 여느 집보다 좀 굵고 표면도 많이 까끌거린다. 육수는 더위를 단번에 날릴 만큼 시원하지만 맛은 밍밍하다. 이 투박한 맛을 평양 옥류관 스타일이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맛도 없어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올여름도 집 앞에 내내 장사진을 친 걸 보면 아무래도 전자 쪽으로 더 유명한 듯 싶다. 물·비빔냉면 8000원, 회냉면 1만원, 02-717-1922.

아소정
간재미 올린 회냉면, 한옥서 분위기 잡고 먹을까


스스로의 인생을 자조한다는 뜻이라는 운치 있는 이름은 흥선대원군의 별장 이름에서 빌린 것이다. 냉면집 앞 동도중학교 안에는 흥선대원군이 생을 마감했다는 아소정 터가 남아 있다. ㅁ자형 한옥 마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붕을 뚫고 자라는 100년 된 은행나무다. 마당에 천장을 덮고 한가운데에 평상을 만들었는데 이 자리가 아주 명당이다. 비오는 날이면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물냉면, 비빔냉면, 회냉면, 섞음냉면(꾸미로 회와 고기를 반씩 얹은 것) 네 가지 냉면 중 간재미를 얹은 회냉면이 가장 인기가 좋다. 맵지 않고 달달한 맛의 갈비찜도 대표 메뉴다. 7000원, 02-703-5959.

■서초구 양재동 (동원 F&B 홍보실 김일규 대리)

평가옥
어제 한잔 했다면 … 깔끔한 육수로 속 달래보자


평양시내에 있던 제일면옥의 맛을 3대째 잇고 있는 북한음식전문점이다. 여러 부위의 고기와 뼈를 8시간 우려낸 육수는 멸치국물처럼 깔끔하다. 해장용으로 아주 좋다. 워낙 심심한 맛이라 평양냉면 매니어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인기가 좋은데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맛이지?’ 난감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물냉면에 적당히 매운 맛을 가미할 수 있도록 테이블마다 다대기를 준비해 놓았다. 9000원, 02-3462-1577.

■강남구 청담동 (홍보대행사 비주컴 김민정 실장)

산봉화로구이
산봉냉면의 개운한 맛 그대로


기본은 고깃집인데 그 유명한 산봉냉면집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냉면 맛도 좋다. 이곳의 물냉면 육수는 조미료 맛이 덜 가미된 동치미 국물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비빔냉면의 경우는 맵기보다 달콤한 쪽이어서 너무 매운 양념이 부담스러운 점심시간에 적당하다. 5500원, 02-546-2229.

청담식당
시원하고 깊은 물냉면, 달콤매콤 비빔냉면


고기도 팔고 나름의 코스 요리도 있는 한식 요리집이다. 물냉면도 맛있던 기억이 난다. 깊은 맛이 우러나는 육수가 시원하고 개운했다. 개인적으로 매운 음식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해선 비빔냉면에 감탄하지 않는데 이 집의 비빔냉면은 제법 맛있었다. 7000원, 02-518-9600.

■강남 테헤란로&대치동 (무역협회 장호근 홍보실장)

우래옥
싱거운 듯, 시원한 듯 … 비싼 듯, 불편한 듯


64년 전통을 자랑하는 을지로 우래옥의 강남 지점이다. 메밀로 만든 면발과 정통 평양식 냉면에 충실한 육수 맛으로 인정받는 집이다. 색깔은 간장을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심심함이 느껴진다. 결코 한 번에 좋아질 수는 없지만 다시 찾는 사람들은 모두 이 맛에 반해서 간다. 그런데 냉면 한 그릇에 1만원이어서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 깊은 맛, 전통도 좋지만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서비스가 불친절해서 맛있게 먹고 난 뒤 돌아나올 땐 마음 상하는 경우도 많다. 02-561-6121.

■강남 삼성동 (삼성물산 이윤정 홍보팀 과장)

봉피양
놋쇠그릇에 김 서릴 정도로 시원하고 담백


벽제갈비가 운영하는 평양냉면 브랜드다. 메뉴판을 펼치면 ‘갈비 먹을 땐 냉면이 맛있어야 한다’라는 글과 김태원(72) 장인의 사진이 보인다. 김씨는 남한의 평양냉면 맛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짜유기(놋쇠그릇)에 담겨 나오는 물냉면은 일단 보기에 고급스럽다. 그릇 표면에 김이 하얗게 앉을 만 큼 육수는 시원하고 담백하다. 무엇보다 반찬으로 나오는 얼갈이김치 맛이 예술이다. 냉면 한 젓가락에 사각거리는 얼갈이김치 한쪽을 같이 씹으면 정말 맛있다. 1만1000원, 02-587-7018.

서초사리원
불고기에 와인 마신 뒤 즐기는, 무난한 한그릇


불고기와 와인으로 더 유명한 집이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 가운데 ‘불고기와 어울리는 와인’ 에피소드에 나왔던 바로 그 집 맞다. 외국인 손님들이 쉽게 익숙해질 만큼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입맛을 추구한다. 고기를 먹고 난 후 먹게 되는 냉면도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으로 심심하진 않다. 어른들에게는 이도 저도 아닌 맛일지는 몰라도 젊은층은 부담이 없어서 좋아한다. 물냉면은 직접 메밀을 빻아 면발을 뽑는 평양식 냉면이다. 8000원, 02-3474-5005.

대학가 앞 냉면 맛집 

■세종대 앞 (세종대 민현자 홍보과 주임)

서북면옥
좁은 가게, 굵은 면발 … 담백하고 고소한 육수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40년 역사의 평양냉면집으로 학교 총장님도 자주 들르는 곳이다. 테이블은 홀에 4개, 방에 4개. 식사시간이면 당연히 길게 줄이 늘어선다. 여사장님은 그게 늘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그래도 가게를 확장시킬 계획은 없단다. ‘시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오래된 맛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오래된 집의 정서까지 고스란히 주고 싶다’는 것. 직접 빻은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면발은 국수보다 굵지만 부드럽고 찰기도 있어 먹기가 좋다. 고기와 다양한 야채를 넣고 우려냈다는 육수에서는 적당한 짠맛과 담백함, 그리고 기름기 살짝 도는 고소함까지 느껴진다. 줄을 서서라도 꼭 한번 맛볼 가치가 있는 집이다. 6000원, 02-457-8319.

■건국대 앞 (건국대 김호섭 홍보실 과장)

남도냉면
오징어 물회 올린 비빔냉면, 맛 좋고 값 싸고


외지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냉면집을 수소문했을 때 여러 명이 추천했던, 광진구에서는 손꼽히는 맛집이다. 학교 주변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도 특색 있다. 볏짚으로 초벌구이 훈연을 한 양념 돼지고기 목살·갈비살을 냉면과 함께 내는 ‘볏짚갈비냉면’이 유명하다. 육수의 산도를 맞추기 위해 식초 대신 레몬을 넣은 ‘섞어냉면’, 꾸미로 오징어 물회를 얹은 ‘오징어회비빔냉면’도 이 집만의 별미. 무엇보다 10년 전부터 냉면에 ‘올인’하고 있는 사장님의 열성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 고기를 훈연하는 볏짚도 고향인 해남에서 올라오는 것이라고 한다. 볏짚갈비냉면 5000원, 오징어회비빔냉면 6000원, 02-497-6449.

■숙명여대앞 (숙명여대 김애희 홍보실 차장)

서울쌈냉면
입에 불나는 비빔냉면 … 중독성 강해 ‘주의’ 요함


비빔냉면이 특히 맛있는 집이다. 워낙에 맵고 달아서 냉면의 깊은 맛은 없지만 중독성 강한 매운맛을 찾는다면 OK. 주문할 때 ‘덜 맵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벽에는 ‘너무 매울 경우 육수를 조금 부어서 물냉면처럼 먹어도 맛있다’고 적혀 있다. 점심시간마다 집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냉면을 시키면 1인당 80~100g 정도의 돼지갈비숯불구이를 공짜로 준다. 냉면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흠이라면 무조건 신발을 벗어야 하는 방석용 테이블이라는 점이다. 4500원, 02-704-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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